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두코 전투 (문단 편집) == 한국군 상황 == 당시 중대장이던 이춘근이 보기엔 부대 내부에 문제점이 몇 가지 있었다. 1)안전사고 그는 이것을 파병 병사들이 어쩔 수 없이 갖게 된 전쟁공포의 징후로 파악하였다. 2)여긴 적의 땅이다 '그 현대화된 프랑스군도 박살났는데[* 사실 당시 프랑스군이 프랑스군 내의 병력 중 손꼽는 정예병이다라는 말은 맞지만 현대화됐다고 보긴 무리가 있다..베트남에 파병된 프랑스군은 해군의 함포사격이나 공군의 공중 지원등 각종 화력이 풍부하긴 했지만 보병병기 자체는 베트민이나 프랑스나 별 차이가 없었고 SKS 반자동소총이나 기관단총을 지급 받은데다가 유연하게 박격포의 지원을 받았었고 숫자도 훨씬 많았던 베트민이 보병 대 보병의 전투에선 오히려 더 유리하기까지 했고 당시의 전투는 대부분이 보병대 보병 전투였다. 그냥 강대국의 군대도 박살났는데... 이런 의미의 말씀으로 이해하면 될듯.]우리의 지금 상황은 대체 무엇인가?'라는 말. 그의 생각엔 부대의 화력이 적에 비해 썩 좋은 편이 아니었다. 게다가 여긴 적이 먹고 사는 땅이었다. 그는 부대에 올라오고 나서 2개월 뒤에, 당장 전의부터 고양시켜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. 싸우다가 죽으란 건 비정한데다 직접 현장을 뛰어보니 말도 안 되는 소리이고, 살려면 싸워야 하고 싸우려면 훈련해야 한다는 분위기로 몰고 갔다. 안전사고를 당해 피 흘리는 일을 막으려면 불만 없이 중대장 말을 따르라고 독려했다. 이후 몇 번의 작은 교전을 피해 없이 마무리하는 데 성공하며[* '작은 교전'은 푸캇산 공략전을 말한다. 이후에도 마을에 나갔다가 2m 앞에서 총 맞을 뻔했다가 운 좋게 살아남은 병사가 되려 저격수를 제압하기도 하는 등, 부대 주변이 평온한 분위기는 아니었다.] 사기가 오른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